1인 1표제와 조직 동원이 부를 ‘지지층 교체’와 정체성 해체의 역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한국 정치에서 오랜 격언처럼 통용되어 온 이 말은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민주당은 단일한 이념의 진보정당이라기보다, 민주화와 진보 운동의 역사적 에너지를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며 팽창해 온 거대한 대중정당이기 때문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함이지만, 지금 그 내부에서는 근본적인 구조적 균열이 싹트고 있다. 개혁과 가치를 정당의 존립 이유로 삼는 ‘전통 핵심 당원’과, 당선과 외연 확장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으로 삼는 ‘정치인’ 사이의 간극이 2028년 총선을 앞두고 통제 불능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형적 당원 민주주의가 낳은 ‘조직 동원’의 함정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동일하게 맞춘 ‘1인 1표제’와 본경선 당원 투표 비중 70% 확대는 표면적으로 당원주권의 완성을 알리는 개혁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행위자의 생존 전략을 바꾼다. 당원의 손에 강력한 공천 권력이 주어지면서, 2028년 총선 출마 예정자들에게 공천 경쟁의 본질은 ‘정책과 비전의 설득’이 아닌 ‘자기 표가 될 신규 당원 확보 경쟁’으로 급속히 변질될 유인을 갖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당원 민주주의의 조직화 역설’이 발생한다. 수십 년간 당비를 내며 민주화, 검찰·사법 개혁, 노동·복지 등 진보적 정체성을 공유해 온 핵심 당원과, 선거를 앞두고 특정 출마자의 지역 인맥이나 부동산·개발 이슈 등 이해관계에 이끌려 들어온 신규 당원의 표 가치는 제도상 완전히 동일하다. 정당 가입에 이념적 훈련이나 역사적 경험을 요구하지 않는 구조에서, 대규모로 동원된 신규 당원의 유입은 당원 수의 양적 팽창을 가져올지언정 당의 정치적 동질성을 급격히 희석시킨다.
외연 확장이 아닌 ‘지지층 교체’가 부를 정체성의 배신감
가장 치명적인 시나리오는 경선 현장에서 현실화될 수 있다. 정치 신인이나 도전자가 지역 기반의 중도·보수 성향 신규 당원을 대거 입당시켜 조직표를 구축할 경우, 기존 핵심 당원들이 지지하던 선명성 있는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하고 중도·보수 성향 후보가 민주당의 간판을 달게 되는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
이때 전통적 지지층이 겪을 충격은 단순한 선거 패배를 넘어선다. “내가 지켜온 민주당의 정체성이 다른 이들에 의해 통째로 탈취당했다”는 정체성의 배신감은 정당의 결속을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이는 중도층을 더해 저변을 넓히는 정상적인 ‘외연 확장’이 아니라, 기존의 진보적 토대를 허물고 주인을 바꾸는 ‘지지층 교체’에 불과하다. 왼쪽의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고 무당층화되거나 제3지대로 흩어지는 순간, 민주당은 겉으로는 의석을 유지할지 몰라도 고유의 정치적 자산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누가 민주당의 주인인가’에 답해야 할 시간
대중정당이 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층을 견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략이다. 그러나 정당의 핵심 철학을 비워둔 채 오른쪽으로만 이동하는 정당은 집권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없다. 당원에게는 개혁을 말하고, 유권자에게는 중도 실용을 말하며, 출마자에게는 무조건 이기는 정치를 주문한다면, 결국 구성원 모두가 저마다 다른 허상의 민주당을 상상하게 될 뿐이다.
2028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마주할 가장 본질적인 전장은 외부 정당과의 대결 이전, “누가 민주당원이며, 무엇이 민주당의 본질인가”를 둘러싼 내부의 정체성 투쟁이다. 당원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정당의 힘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던 핵심 당원들이 효능감을 잃고 떠나갈 때, 민주당은 이름만 남은 거대한 선거 기술자 플랫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위기는 진보의 분열에서 오지 않는다. 민주당이 정체성을 내려놓았을 때, 진보적 당원들이 더 이상 민주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부르지 않는 순간 진짜 위기는 시작된다. 공천의 룰을 넘어 정당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하는 근본적인 응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