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에게 지방으로 오라고 한다.
지방소멸을 막아야 하고, 지역에 청년이 필요하며, 청년이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창업을 지원하고, 청년농을 육성하고, 주거비와 정착비용을 지원한다. 지역에 기업을 유치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놓는다.
그런데 청년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지방에서 사는 것이 정말 수도권에서 사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편리한가.
오히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방에서는 자동차가 필요하고, 자동차를 유지하는 데 돈이 든다. 문화생활을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병원이나 쇼핑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도 이동해야 한다. 결국 지방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이 수도권보다 더 많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청년에게 지방으로 오라고 하기 전에 이 문제부터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청년에게는 K-패스가 있다
2026년 대중교통 지원은 한층 확대됐다.
K-패스는 대중교통 이용 실적에 따라 일정 비율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특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출퇴근 시차 시간대에는 환급률이 더욱 높아진다.
오전 5시 30분~6시 30분, 오전 9시~10시, 오후 4시~5시, 오후 7시~8시 이용분에 대해서는 일반 50%, 청년 60%, 저소득층 83.3%의 환급률이 적용된다.
가령 환급 대상 이용분으로 월 10만 원의 대중교통비를 사용한다고 단순 가정하면 청년은 6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연간으로 보면 72만 원이다.
물론 실제로 월 교통비 전체에 60%가 적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용 시간과 금액 등에 따라 실제 환급액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금액 자체가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청년에게는 이동에 드는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수도권의 강점은 단순히 교통비 지원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수도권에서는 교통이 곧 생활권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거대한 하나의 대중교통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직장과 학교, 상업시설과 문화시설을 오갈 수 있다.
교통이 생활권을 연결한다.
퇴근 후 영화관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공연을 보고, 전시를 관람하고, 서점에 들르고,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은 뒤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다.
문화생활을 누리는 데 별도의 자동차 유지비가 필요하지 않고, 이동에 드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지방에서는 문화생활 자체가 하나의 ‘이동’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에서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도 움직여야 한다
지역에 영화관이 없거나 선택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제한적인 경우가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가까운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을 수 있다.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싶어도 가까운 곳에서는 선택지가 부족하다.
대형 서점이나 전문 쇼핑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영화표만 사면 되는 것이 아니다.
기름값이 든다.
주차비가 든다.
왕복 이동시간이 필요하다.
서울에서는 대중교통으로 30~40분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지방에서는 몇 시간짜리 일정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지방에서 살아가는 데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지방 청년에게 자동차는 사치품이 아니라 생업의 도구다
지방의 청년에게 자동차는 문화생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방에는 수도권만큼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그래서 청년이 직접 자신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게를 열고,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창업한다.
농업에 뛰어드는 청년도 있다.
농업 역시 자신의 자본과 노동으로 생산물을 만들고 판매해 소득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생업이자 창업이다.
그런데 창업도, 농업도 모두 이동을 필요로 한다.
농지로 가야 하고, 농자재를 사야 하며, 생산물을 운반해야 한다. 거래처를 만나고, 금융기관이나 관공서를 방문해야 한다.
대중교통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자동차가 필요하다.
자동차를 구입해야 하고, 보험료를 내야 하며, 기름값과 정비비도 부담해야 한다.
지방에서는 자동차가 편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업을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일자리와 주거를 만드는 것은 장기적인 문제다
물론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청년이 원하는 주거단지를 조성하고 의료·교육·문화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새로운 주거단지를 만드는 데도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생활 인프라를 갖추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금 지방으로 내려오는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청년은 지금 일해야 한다.
창업해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가게를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즐기고, 자신의 삶도 살아야 한다.
청년의 삶은 미래의 산업단지가 완성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시작된다.
지방에서 사는 것이 더 비싸다면 청년은 왜 와야 하는가
청년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계산해보자.
수도권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수 있다. K-패스를 통해 교통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퇴근 후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으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갈 수 있다.
친구를 만나고, 공연을 보고, 전시를 관람하고, 쇼핑을 하는 것도 대중교통으로 가능하다.
반면 지방에서는 자동차가 필요할 수 있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유지해야 한다.
문화생활을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 있다.
병원이나 쇼핑시설도 멀리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방에서 사는 것이 수도권보다 반드시 저렴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생활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면서 누릴 수 있는 선택지는 줄어드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청년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지방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는가?”
K-패스의 사각지대는 ‘자동차가 필요한 사람’이다
여기서 K-패스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K-패스는 수도권 청년에게만 적용되는 제도가 아니다. 전국에서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를 단순히 ‘서울 청년은 K-패스를 받고 지방 청년은 못 받는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K-패스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의 이동비용을 줄여준다.
그렇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 자동차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의 이동비용은 누가 줄여주는가.
버스가 하루 몇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농업을 위해 농지와 생활권을 오가는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업을 위해 거래처와 사업장을 오가는 청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인근 도시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야 하는 청년은 또 어떠한가.
이들의 이동비용은 대부분 개인의 몫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방에는 ‘지원 패스’가 필요하다
가칭 ‘지원 패스’라고 해보자.
모든 지방 청년에게 자동차를 사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중교통이 충분한 지역에서는 K-패스를 활용하면 된다.
대중교통이 취약한 지역에서는 수요응답형 교통이나 지역형 통근교통을 확대할 수 있다.
자동차가 생업의 필수 수단인 창업 청년이나 청년농에게는 차량 구입비, 보험료, 유류비 등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주요 문화시설을 연결하는 교통지원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핵심은 교통수단 자체가 아니라 청년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공평한 정책은 똑같이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정책에서 ‘공평’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서울과 지방은 생활환경이 다르다.
대중교통의 밀도도 다르고, 문화시설의 접근성도 다르며, 의료·교육·쇼핑시설까지의 거리도 다르다.
그런데 똑같은 방식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결과까지 공평해지는 것은 아니다.
버스와 지하철이 충분한 곳에서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과,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어려운 곳에서 동일한 지원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환경이 다른데 같은 처방을 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평할 수 있다.
실질적인 형평성은 지역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착’이 아니라 ‘살 만한 삶’이다
청년에게 지방으로 오라고 한다.
하지만 정착지원금 몇백만 원을 주는 것만으로 청년의 삶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은 돈만 받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일해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며, 문화를 즐겨야 하고, 자신의 삶을 누려야 한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을 때 영화관에 갈 수 있는 삶.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삶.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삶.
병원에 가야 할 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삶.
이런 일상의 조건이 갖춰져야 ‘정착’이라는 말도 의미를 갖는다.
삶의 만족도가 낮고, 생활비가 더 많이 들고, 이동시간까지 길다면 청년에게 지방은 새로운 기회가 아니라 추가 비용이 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생활권’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소멸의 본질은 인구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살고 싶은가의 문제다.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살 만한 집이 있어야 한다.
병원과 교육시설이 있어야 한다.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공간을 연결하는 교통이 있어야 한다.
일자리와 주거를 만드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다.
하지만 이동과 문화 접근성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다.
청년에게 지방으로 오라고 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가.”
“그곳에서 이동할 수 있는가.”
“그곳에서 문화와 일상을 누릴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은 K-패스, 지방은 ‘지원 패스’(?)
결국 ‘지원 패스’는 단순한 자동차 지원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지방 청년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일자리로 갈 수 있고,
농지로 갈 수 있고,
병원으로 갈 수 있고,
시장으로 갈 수 있고,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있고,
영화 한 편을 보러 갈 수도 있는 이동권이다.
수도권에서는 대중교통이 이 역할을 한다.
지방에서는 자동차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서울에는 K-패스가 있다면, 지방에는 지방의 현실에 맞는 ‘지원 패스’가 필요하다.
청년에게 지방으로 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정책의 공평함은 모두에게 똑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데 있지 않다.
어디에 살든 자신의 생업과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데 있다.
지방에서 사는 것이 더 비싸고, 더 불편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이동에 써야 하면서 문화와 생활의 선택지까지 적다면 청년이 지방에 올 이유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방소멸을 막고 싶다면 청년에게 지방으로 오라고 설득하기 전에 먼저 지방에서 사는 삶의 비용부터 낮춰야 한다.
청년이 차부터 사야 하는 지방이 아니라,
차가 없어도 살 수 있고, 차가 필요하다면 그 부담을 함께 나누는 지방.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일과 삶을 지역 안에서 이어갈 수 있는 지방.
그런 지방이라야 청년에게 ‘정착하라’고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다’고 선택받는 곳이 될 수 있다.